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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취재

<선진문학 뉴스 감성채널 -예술을 잇다. 사람을 잇다. 인물초대>


선진문학뉴스  감성채널


예술을 잇다. 사람을 잇다. 인물초대  - 김보경 시인

 



투명한 ''의 끝없는 울림을 넘어 형이상학을 노래하는 시인 /김보경 

 


 

1. 흑백 사진 / 김보경

 

자줓빛 목단 꽃잎이 내 얼굴을 덮을 때

아버지 나를 안고 서 계시고

오빠 손을 잡은 어머니 등에는

동생이 업혀 졸고 있다

 

빨랫줄에는 어머니의 손 바쁜 한나절이

봄바람에 너풀거리고

오랜 병환으로 누워 계셨던 할아버지 방

쾌쾌한 냄새 가득해 들어가기 싫었던

그 방문을 외로이 지키는 등 굽은 지팡이

 

장롱 깊숙이 누워 먼저 덮인 지난날

낡은 사진첩 넘길 때마다

지난온 세월도 따라 넘긴다

 

나도 저 낡은 사진첩 한쪽에 함께 누워

누구의 가슴에 추억이 되어 갈

흑백의 시간을 걷고 있다

 


2. 각질 / 김보경

 

풀어놓지 못한 가슴앓이

기억을 잃고 누운 멍한 껍데기

초점 없는 목각인형처럼

웃을 수도 울지도 못하는

벙어리 된 무거운 고요를 뒤집어쓴 자리

방향 잃은 시계는 과거에 멈춰 있다

 

어린 딸아이 머리에 쇠딱지 떼어냈던

후련함과는 다른 울컥거림

명치 끝에 얹힌 긴 세월의 체증 같은

울다가 퉁퉁 불어터진 설움 같은

시린 바람에 못 이겨 자포하는 낙엽 같은

 

푸석하게 마른 몸을 닦아낸다

살에 달라붙어 더하고 곱한 앙금

나누어 추락하는 얇은 무게

침묵한 세월을 털어내고

무관심이 지배한 썩은 욕창의 고름을 짜 낸다

 

 

3. 나도 누구에게 꽃이고 싶은 적 있었다/ 김보경

 

참았던 허기를 채우다

눈물이 찬이 되어버린 밥상이

울컥 서럽다

서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허기는 면한게지

봄날 무수한 꽃잎을 보고

눈물 떨군 이유는

나도 누구에게 꽃이고 싶은 적

있었기 때문이다

 

 

4. 인생 주식회사 / 김보경

 

매일 집으로 돌아오는 고단한 가방 안에는

하루해를 당당히 치고 온

조금의 생명수당이 꼬깃꼬깃하다

뻔뻔하고 숭숭한 틈 속에 치열함

누구에게 죄가 되고

누구에겐 면죄부가 된다

위로가 되다 거슬리고

희망이다가 멍에가 된다

놓을 수도 없겠거니와

잃어버려서도 안되는 테두리를 지키며

꼿꼿한 걸음으로 질펀한 세상에 소속되어 있다

 

 

5. 나만의 방식/ 김보경

 

삶이란

소리없는 바람이 문틈 사이에 끼여

꺼이꺼이 우는 것

미풍에 베이고

꽃잎은 흔들리고

초승달에 탄식하며

사람에 취해 가끔 나를 잃어버리는 것

 


 

 

6. 명자 씨 나랑 꽃구경 가자/ 김보경

 

명자 씨 옷장엔 늘 꽃치마가 걸려 있다

분홍빛 립스틱도 화장대위에 줄 서 있고

햇볕을 못 가리고 제 용도를 잃은

창 넓은 모자도 그늘진 채 누워 있다

뽀얗던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예뻤던 손등에는 사마귀꽃이 피어나고

방금 놔둔 물건을 못 찾아 당황하기도 한다

명자 씨는 이제 8학년이다

그녀가 목단 꽃처럼 웃을 때가 제일 이쁘다

여든 번째 봄이다

명자 씨 꽃치마 입고 나랑 꽃구경 가자

 

 

7. 초로 / 김보경

 

헝클진 머리카락 매만질 여유 없이 달려온 길

찬밥 물 말아 김치 한 조각

꺾어진 신발 바로 신을 짬조차 놓친 채

바쁜 해 뜨고 늦은 달 진다

 

어둠 앞에 눅눅한 하루 돌아보니

주르륵 땀방울 마디마디 저려와도

투정도 아파함도 사치

엿가락같이 늘어진 몸 뉘기 급급한 삶

 

삐걱대고 멀미 나는 삶의 쳇바퀴

더디 가라

더디 가라

 

 


8. 쉰으로 가는 길목/ 김보경

 

세월을 훑고 휘어진 못생긴 손가락

미리 닳아 삐걱대는 무릎

가시처럼 빠지지 않고 박힌

오랜 멍을 얹고 무게를 디딘 엄지발톱

 

접고 접어도 속없이 펼쳐지는

고장 난 자동 우산처럼

날갯짓하는 꿈을 꾸겨 넣으며 서성이던 날들

허공 속으로 증발한 웃음은 부메랑이 아니었다

 

마른 밤을 쥐어짜는 꿈틀거리는 시마

황무지에 흩어진 깨알 같은 시어를 엮어

밤마다 토해내는 열정의 옹알이

서리꽃 날리는 머리 위로

눕히지 못한 언어들이 굴러다니는 소리

 

젖은 발을 담그고

얕은 바람에 힘없이 쓰러지다

채운 속을 다 내어놓고

선 자리에 다시 누운 탈곡된 볏짚처럼

미완의 꺼풀을 벗고 있는 중년의 길목

 

 

9. 젊은 날의 초상/ 김보경

 

배가 고파 보채는 아기

바닥에서 찰랑이는 두어 모금의 우유

몇 스푼 안 남는 분유를 털어

물을 가득 채운 멀건 우유병을 흔든다

아니 탁한 물병일 게다

 

벌렁 누워 고픈 배를 채우는 아기

어미의 속을 아는지

제 맛도 안 날 우유를 단숨에 먹어 치운다

가난에 갈라터진 한숨을 뱉고

울컥 울컥 끝도 없는 설움을 토해낸다

 

빈 분유통을 쓰레기통에 곤두박질치는 소리

바닥난 쌀독을 긁는 허기진 바가지 소리

귀를 틀어막고 일그러진 뭉크의 절규같은

 

 

아기에게 먹일 밥물림으로 찬밥 덩이를 끓인다

 

 

10. 호랑이 굴에 토끼가 살았다 /김보경

 

누명을 쓴 무기수

그녀의 죄명을 아는 이가 없다

대꾸를 해도 하지 않아도

살기 돋은 교도관의 무참한 욕지거리와 손찌검

아침이면 무기수는 처절한 밤을 머리에 두르고

고개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작은 아들의 계획으로 탈출을 시도했다가

딸의 자백으로

다시 돌아온 멀미나는 동굴 속

교도관의 포로가 된 비굴하여 수치스러운 나날들

운 좋게 가석방된 큰아들

출소가 머지않은 작은아들

겁에 질린 눈으로 그 누구도 나서

말려주는 이는 없었다

 

교도관의 방에 제초제 냄새가 코를 찌르던 날

동료의 조기 출소

무기수는 무죄로 석방되었다

아버지의 나라는 멸망하였다




 

투명한 ''의 끝없는 울림을 넘어 형이상학을 노래하는 시인 김보경

 

 

오늘날 우리는 탈(persona) 시대, 탈 문학의 시대, 해체론 시대에 살고 있다. 해체론 시대라 하여, 행과 연이 시의 본질인 함축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문학의 경계가 확장되고 넓어진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신비평)의 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인간의 충동 중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충동 중 가장 두려움과 공포는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이자,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김 시인은 삶의 경계에 선 생성과 소멸을 넘어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시인으로 자아의 동시성을 이루어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katharsis)를 자아내게 했다. 김 시인은 일차원적 언어의 기능을 넘어 부재 하는 것, 현재하는 것, 죽음의 생성과 소멸을 넘어 여백의 미를 살려 일차원적 언어가 아닌, 화자만이 가진 고유한 언어인 심상(의미)을 따라 관조적이면서, 서사적이며, 서정적이자, 인간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인간의 본성(本性)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초월한 투명한 ''의 끝없는 울림을 넘어 형이상학을 노래한 시인이라 볼 수 있다.

 

 

 김보경 시인 프로필

문학의봄 신인 문학상 수상

공저 그리움도 흘러간다. 오고 있을까 그대



                                                                                                                                                평론가 김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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