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의 트라우마로부터 나르시시즘을 벗어난, 자연과 생태의 심상이 치유의 시로 형상화되었다./ 김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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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취재

<선진문학뉴스 감성채널- 예술을 잇다. 사람을 잇다.-인물초대>인간 내면의 트라우마로부터 나르시시즘을 벗어난,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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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문학뉴스 감성채널- 예술을 잇다. 사람을 잇다.-인물초대>

 


인간 내면의 트라우마로부터 나르시시즘을 벗어난, 자연과 생태의 심상이 치유의 시로 형상화되었다./ 김단 시인

 



1. 중년의 밤이 깊어 갈 때 /김단


어둠의 늪 속에 나는 내려지고
내려진 나는 더없는 시간의 차가움을 느껴야 했다
차가움을 느낀다는 건
삶에 대한 만족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만족하지 못했던 나의 미성숙함을 느꼈던 것일까
흐르는 세월 속에서 나의 부존재를 느낄 때
나는 내 속의 허무함이 비로소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비우고 채우고
또 채우고 비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비우지도 채우지도 못하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금 이 허무함에 대해서는
나는 나의 전부를 비운 후에도
나는 나를 다시 채울 수가 없었다

탈진 후
다시 일어나고 싶은 그런 간절함
나는 과연 그런 간절함을 느껴본 적이 있었나
또한
차갑게 식은 심장에
뜨거운 피를 수혈하고 싶은 열망
나는 과연 그런 열망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오늘따라 유난히도 시린 바람에 어깨가 뻐근해져 온다
마치 길가에 서 있는 가로수인 양
갈잎을 버려야 하는 두려움으로 온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사색의 고요함이라 할까
마치 허물어진 담벼락에 깔린 담쟁이의 저 슬픈 표정처럼
허무함을 버릴 수 없는 갈잎의 그 슬픈 노래처럼
오늘따라 깊어져 가는 이 밤의 표정이 유난히도 더 추워 보인다.

 

 

2. 소금꽃 전시회 / 김단 (2018 샘터문학상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저 멀리
희미한 달빛이
축 처진 어깨를 부여잡고
사립문안까지 걸어오고 있다

두어 평 남짓 좁은 공간에선
안도의 한숨이 방바닥을 향해
털썩주저 앉아버린다
귀찮은 듯
구멍 난양말을 벗자
서글픈 냄새가온방 가득 번져가고
달빛이 벗어놓은 메리야스엔
아주 오래전에 말라버린소금 꽃이
선명하게 반짝인다

찰랑찰랑
눈물 고인 술잔은
어느새
가난한 숨소리가 되어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3. 초월[超越]의 영역에서 / 김단

친구야
흘러가는 세월의 강가에서
우리 바람처럼 순응하며 살아가세
바람이 있기에 꽃이 피고
꽃이 져야 열매가 열리거늘
어이 떨어진 꽃잎만 들고 그리도 성급하게 주저앉아만 있는가
바람이 달려가는 숲길에선 가녀린 들꽃마저도
저렇게 즐거이 노래하고 춤추는데

친구야
피지 않으면 꽃이 아니고
불지 않은 것 또한 바람이 아니며
멈춰 서버린 모든 것 또한 세월이 아니라네
태초 원시의 삶은 희극과 비극이 아닌
무미건조한 한편의 드라마였겠지만
아둥거리고 바둥거리며 살아온 삶의 도중이지만
이른 아침 거울가에 비친 삶의 주름이
그리도 친숙하게 느껴지는건 어이 된 일일까
괜스레 창틀 너머에서 살짜기 불어오는 바람에
눈시울이 붉어지는건 또 어이 된 일일까

친구야
우리 삶의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보세
하나하나의 행동에 감정을 대입하지 말아보세
초월의 나이
깊은 각성은 통속한 세월을 보는 한 단면일 뿐
이제는 눈으로 일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삶을 볼 줄 아는
그런 혜안을 가지고 살아가 보도록 하세
태초부터 초월이라는 단어 속에는
무한이라는 제한선은 없었으니까

친구야
우리 이렇게 살아가세
물처럼
바람처럼
저기 저렇게
두리둥실 흘러가는 저 뭉게구름처럼 말일세.

 

 

4. 어차피 만나게 될 것을 / 김단


이제 남은 시간도 얼마 없다
짙푸르게 보이던 하늘도 점점 더 하얗게 보이고
바짝 탄 목구멍 안에선마른 기침만연신 새어 나온다
하얀 백열등 아래열병을 앓은 듯
온몸이물먹은 솜처럼무겁기만 하다

작년 여름
장마 때부터 새기 시작한 얼룩이
천장 가장자리 쪽에 선명히 그려져 흐릿해진 눈을 어지럽힌다
열 한해 전 어느 봄날
할멈이 허리를 두드려가며 힘들게 한 도배였는데

얼마나흘렀을까
집 앞 텃밭에서 억새 뿌리를 괭이로 캐고
동네 어귀자그마한논배미에봇물 보러간지가언제였는지 이젠 아예 기억조차도 나지 않는다
할 일도 많고
하고픈 일도 많았는데

일어서야지
다시 꿈지럭거리며 일어서야지
텃밭에 심은 들깨랑 참깨 볶아손주 녀석들 오면바리바리 싸서 보내주어야 하는데
어이할꼬
이 망할 놈의 침대가
이썩을놈의 방구석이삶에 지친 육신을 놓아주질 않는구나

오늘따라
아홉 해 전동지섣달그 추운 날
뭐가 그리 급하다고두눈가에이슬 가득 머금고 간 할멈이 이리도 눈에밢힐꼬
어차피 마음의 문만열면
어차피 이생의문턱만 넘으면 서로 만나게 될 것을.

 


 

5. 봉인된 기억, 소낙비가 해제하다 /김단


지옥 같던 여름과 인정 많던 아재의 주검
힘겹게 봉인된 기억이스멀거리며기어 나온다

그해 여름은 얼마나 더웠던지 담 위에 올라간 호박이 우비를 준비하거나
마당에 널린 빨래가 땅을 치며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마을 어귀에수백 년 된당나무가 마른 벼락을 맞아 죽은 일도 그때였고
하얗게 말라버린 삼포밭 고랑에서 명석이 아재가 소주병을 입에 물고
가서는 안 될 길을 간 것도 바로그때쯤이었다

여름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화염이 이글거리던 그때는 한 폭의 거대한 지옥도 풍경이었다
그해 여름 뜨거운 태양의 포로가 된 구름은
아재가 한 줌의 재가 될때까지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려주질 않았다

하늘이 울고 있다
아재에 대한 사죄일까
거친 비가 밭고랑 사이에서 아주서럽게울고 있다
출렁이는 땅을 디딤돌 삼아 끝없이 하늘로 솟구쳐 가면서.

 

 

 

인간 내면의 트라우마로부터 나르시시즘을 벗어난, 자연과 생태의 심상이 치유의 시로 형상화되었다./ 김단 시인

 

 

인간은 누구나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소설 오이디푸스 왕,적과 흑,이방인,데카메론의 고전에서부터 헨젤과 그레텔,데미안,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알베르 카뮈에서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서 카프카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초월적 성찰을 이루는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조정래, 김훈, 박경리, 한강에 이르기까지, 백석의 시와 한용운의 시가 윤동주의 시가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현대 작가들의 최근작까지 망라해 소개된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곧 트라우마이다. 트라우마는 인간에게 있어, 슬픔, 허탈, 이별, 상실, 부재의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시인은 인간이 경험하는 삶의 세계를 묘사하는 데 있어, 인간(화자)이 처한 상황과 현실에 따른 개체의 경험과 일정한 시. 공간적 상황 속에 암시성과 함축성을 아우르게 된다. 인간에게 트라우마는 자기의 연민에 빠지는 나르시시즘이 될 수 있으나, 시인은 1인칭 시점으로, 무형인 언어를 형상화해 나가는 데 있어, 작중인물은 화자일 수밖에 없다. 화자는 자연과 생태를 통해 가난한 숨소리, 친구, 삼포밭고랑, 된당나무, 말라버린 소금꽃, 아재의 주검 () 복잡 미묘한 감정을 운율과 리듬감을 살려 잘 피력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내면에 간직된 트라우마는 일순간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자의 심연에 간직된 상흔은 나르시시즘을 벗어나, 자아의 동일성이 자연과 생태의 조화를 이뤄 형상화치유의 시이다.





프로필 김단 시인

심장에 갇힌 노래』 그리움도 화려한 꽃이다

 

1999년 3월 울산 시장상 수여

2018년 4월 샘터 문학상 소금꽃 전시회.” 시 부문 최우수상 수상.
2023년 3월 김해일보 신춘문예 최우수상 수상

 

 

                                                                                                     평론가 김영미

 

 

 








2 Comments
선진문학뉴스 02.07 16:37  
반가운 인물입니다 ^^ 김단 시인님 이시네요
울산서 잠깐 뵈었는데 우리 아들 명작사진 하나 고맙게 남겨주셨지요
두고두고 잘 보관하고 있답니다
선진문학뉴스 04.01 15:42  
네 늦게 확인이 되었어요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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