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마술상자
문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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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6 03:12
할머니의 마술상자
찌그러진 퇴물이 되기까지
온갖 구수함을 담아도
눈꺼풀이 떨어지기 전에는
그 정겨움을 몰랐었지
울 아베 심부름으로 들고 다녔던
주전자 속 호기심만 충만했었고
코찔찔이 어린 시절
요즘같은 라면 한 봉지는
아주 먼 나라의
간식거리 정도로 여겼었다만
어쩌다 밀가루 한 봉지로
수제비 한 그릇 먹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했던 시절도 있었지
검게 그을린 양은냄비 하나로
허기진 배를 채워주시던
따스한 할머니의 손길이 새삼그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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