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이야기― 형이상학의 시간 [영혼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이야기―형이상학의 시간 [영혼해]
평론가 김영미
연극 〈영혼해〉는 인간 존재의 근원인 삶과 죽음의 비극의 시학을 사유하는 작품
이라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비극은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 비로소 숭고미와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잇는다. 연극 〈영혼해〉는 상실과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의 극한 상황을 무대 위로 올려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의 정화를 넘어, 존재 그 자체를 응시하도록 이끈다.
인간의 삶은 삶과 죽음의 시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삶과 죽음의 가장 극한의 고통이자 공포이면서 비극의 연속이라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가장 비극적인 순간, 인간으로서 감당해 낼 수 없는 고통의 순간 인간은 숭고미와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체험하며, 인간 존재의 근원인 깊이를 사유하게 된다. 인간 존재의 근원인 숭고미는 상징과 비유를 아우르는 카타르시스(catharsis)로 예술의 한 형태인 플롯(plot)을 통해 원형(Archetypus)으로 상징되어 나타난다.
인간에 극한의 고통은 상실로 인간은 태어나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맞는 시련과 고통으로 수면 아래 내재 된 무의식은 전의식과 의식의 층위로 떠오르게 된다. 이러한 순간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순간이자 고통(거울•직면)을 마주하는 순간이 된다. 결국 고통의 순간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것이자, 존재 성찰의 근원이자, 삶과 죽음을 사유하는 형이상학적 지점이라 볼 수 있다.
상실된 아픔과 잃어버린 존재의 근원은 인간 극한의 고통인 비극의 시학이자, 비극의 탄생이라 볼 수 있다. 비극의 탄생은 니체의 ‘희랍 비극’으로 잘 드러나 있다. 이는 아름다움과 평화, 전쟁과 평화로움, 공포와 고통 염세주의, 종교 모든 것을 아우르는 형태로 볼 수 있다. ‘희랍 비극’의 가장 고통받는 존재는 오이디푸스 왕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충격으로 자살하는 아내인 자신의 어머니마저 잃고 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 왕은 스스로 자기의 눈을 찌른다.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존재이자, 인간의 지혜로도 막을 수 없는 불행으로 가련한 삶이 극한의 고통으로, 극한의 고통은 더 극한의 비극인 치유와 성찰로 이어진다.
이러한 비극은 모든 학문에서 비롯된 것이자, 도덕이자, 비도덕이며, 도피와 두려움 그림자, 암흑, 혼돈, 카오스로 무의식을 의식으로 형상화하는 원형(Arche
typus)으로 볼 수 있다. 원형(Archetypus)은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고통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전쟁 중 기다리는 연인으로,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사랑하는 어머니, 아내, 남편,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과 고통으로 극한의 고통이자 비극의 탄생으로 볼 수 있다.
“비극은 죽었다. 이로써 문학은 소멸했다. 사라져라! 없어져 버려라! 하데스로 꺼져라! 그곳에서라면 옛날 위대했던 시인들이 떨어뜨린 빵부스러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으리라!”로 니체는 비극을 어미의 스승으로 경배하는 새로운 예술 장르로 꽃피웠다.
비극의 탄생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닌, 죽음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아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자 행복한 자연의 상태로 상응되는 것으로 소멸에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공간의 영면으로 재창조된 플롯(plot)인 예술의 미학이라 볼 수 있다.
연극 [영혼해]는 지난 12월 27~28일까지 대구 우전 소극장에 막이 올려진 극단 이음의 연극으로 존재의 근원과 형이상학을 잇는 원형(Archetypus•정신)으로 렉시스(Lexis 언어 표현) 밀로스(Melos 노래, 율동) 옵시스(Opsis 스펙터클, 시각적 장치)로 직조한 연극으로 예술 형식이 도달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깊이를 탐색해 담아내었다고 본다.
인간의 생과 사는 사유와 인과성의 존재에 심연에 다다를 수 있는 존재의 인식에 있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비극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닌, 고통을 통해 생을 긍정하는 예술 형식으로 죽음은 종말이 아닌 또 다른 존재 양식으로 〈영혼해〉는 니체의 비극 관을 따라, 죽음을 공포의 대상이 아닌 삶을 완성하는 형이상학적 순간으로 재구성했다. 죽음은 소멸이 아닌, 영원으로 파괴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해체와 생성의 순환으로 무대 위 더 깊은 침잠의 공간으로 제시했다.
A•I 시대, 소통과 부재, 상실의 시대, 탈인간화, 탈 가족화, 가족 해체의 시대 부와 명예, 물질과 편리만을 우선하는 오늘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시하며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무엇인가? 연극 〈영혼해〉는 이러한 물음에 단순한 서사의 차원을 넘어 동시대적 존재 성찰로 확장되어 관객에게 깊은 울림으로 전해진다.
*원형(Archetypus): 칼 융의 분석심리학 이론으로 흔히 심볼(Symbol)이라고도 한다. 원형은 독일어Archetyp (또는, Archetypus )의 역어이다. 이 단어는 복합어로, 'arche-'는 그리스어 'αρχη(알케이)로 '시작·원초·원리·근원 등의 의미를 지닌다. 원형을 '상'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원형 그 자체는 역동작용으로서 마음에 나타나는 것이며 의식은 작용의 결과, 생기는 마음의 변화와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원형 그 자체로는 의식할 수 없는 것을 마음에 작용하면 패턴화된 '이미지' 또는 '상'으로 인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