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경제신문 권덕진 시인 시집 탱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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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경제신문 권덕진 시인 시집 탱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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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의 달력에 그린 소망

사계의 달력에 그린 소망

권덕진 시집탱자의 사계을 보다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1. 디아스포라의 홀씨

 

마침내 인류는 오랜 유랑생활을 끝냈을까? 문명의 상징처럼 거대한 도시를 세우고, 지구촌 곳곳을 인터넷으로 연결한 시대. 휴대전화 하나로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는 시대. 하늘과 바다를 휘저으며 쉼 없이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시대. 이쯤 되면 인류는 고된 유랑을 마치고 정착의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정말 그럴까?

권덕진 시인의 시선은 현대 도시의 곳곳에서 여전히 유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포착합니다. 지난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도시라는 성을 쌓은 인류는 오히려 그 성의 미로를 헤매고 있습니다. 인류는 자신이 건설한 도시에서 유랑의 짐을 들고 갈 곳을 찾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의 눈에 비친 현대인은 도시의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공연을 마치고 또 다른 무대를 찾아 헤매는 노마딕의 후예일 뿐입니다. 초원을 잃어버린 디아스포라의 홀씨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속앓이랑

이제 접고

한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가자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작은 소원에 소박한 꿈이라도

틔웠으면 좋겠어.

 

홀씨전문

 

홀씨의 화자는 직접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라는 숨은 화자가 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적 대상은 홀씨입니다. 화자 가 삶의 여정과 소망을 자성하고 고백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어조입니다. 서정 자아인 가 시적 대상인 홀씨가 되어 지은 시라 할 것입니다. 덧붙여 말하면, 서정 자아와 시적 대상이 하나기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를 동일화라고 합니다. 동일화에는 투사와 동화가 있는데, 자아가 시적 대상으로 들어가는 것을 투사라 하고, 시적 대상이 자아로 들어오는 것을 동화라 합니다. 시적 자아와 대상이 되었을 때 좋은 시가 탄생합니다. 시작에 있어 동일화는 보다 풍성하고 단단한 의미가 내장된 시를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권덕진 시인의 시가 개인적 서정을 넘어 사회 보편적 서정으로 확장되는 것도 동일화의 시작법이 튼튼한 내공으로 체화되었기 때문일 듯합니다. ‘홀씨가 개인적인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애환으로만 느껴지지 않고,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도시적 삶의 보편적 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도심 속 그림자보다 더 검게 그을린

그의 모습을 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도시의 노동자전문

 

어쩌면 권덕진 시인이 갈파한 것처럼 지금 우리의 삶은 고향을 잃어버리고 파편처럼 흩어져 도시의 찬란한 불빛 아래를 유랑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홀씨일 수도 있겠습니다. 초원의 고향에 가지 못하고, 아스팔트와 시멘트 틈새의 빌딩숲에서 살아간다는 것은/포기할 수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아니고 무엇인가?

 

삶이란

처절한 거야

눈감고 비행하지

말아야지.

 

-비행전문

 

한순간 한눈을 팔거나 정신을 놓을 수도 없는 삶이란/처절한 거라는 그의 말이 잠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왜 뛰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려만 가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속도의 마법에 걸려든 도시인의 삶은 마치 사자를 보고 본능적으로 질주하는 얼룩말과 다를 바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 아닌가?

 

2. 설행(雪行)의 노를 젓다

 

좋은 시란 무엇일까? 시인이라면 누구나 좋은 시를 짓고 싶어 하고, 독자라면 누구나 좋은 시를 읽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시가 좋은 시에 해당하며, 그 평가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명문으로 정한 규정은 없더라도 오랜 시문학의 발전을 통하여 형성된 관습이나 기준이 있다고 말해도 큰 실례가 아닐 듯합니다. 그 하나가 이미지입니다. 이미지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지각을 통해 마음속에서 재생된 감각을 말합니다. 형상(形象)이라고도 합니다. 형상은 구체화된 이미지입니다. 시가 언어예술이란 점에서 시짓기는 결국 구체적인 이미지 만들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지엽 교수는 강렬하고 신선한 이미지 하나를 창조하는 일은 시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권덕진 시인의설행은 현대 도시인의 삶의 실상에 대한 선명한 이미지가 돋보이는 시라고 하겠습니다.

 

한계령 고개를 오르다가

폭설에 발이 묶여

세상과 고립되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처음 눈을 뜨는 눈동자에

은백색 꽃송아리

휩싸인 설원뿐이다

 

세상에 쫓기듯

찾아온 지독한 외로움

그 자리 선 채 얼어붙었다

 

눈벌판에 파묻혀

가로막힌 상고대 능선 즈음

잔눈발에 흩어져도 좋다

 

썩은 그루터기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할 곱은 마음

송두리째 부서져도 좋다

 

온몸이 해지도록 눈꽃 바람에 휘돌다

산바라지 돌아설 인연이라면

애오라지 품지 못할

헛된 맹세일 뿐이다.

 

- 설행전문

 

사람은 밥과 꿈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합니다.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함의입니다. 삶의 길에서 양 수레바퀴가 균형을 이루고 잘 굴러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꼭 그렇게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사인 듯합니다. 때로는 사각바퀴를 메고 진흙탕 길을 걸어가는 수난의 시절을 견뎌내야만 할 때도 있고, “폭설에 발이 묶여/세상과 고립되어” “지독한 외로움에 빠지기도 할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한 번쯤은 온 몸이 아프도록/홍역을 치르고 가슴앓이를 겪는(노를 젓다일부)것이 인생일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꿈마저 포기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꿈은 추억과 소망으로 만들어가는 세계입니다. 사람은 추억과 소망의 뜨락에서 존재의 이유는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꿈은 삶의 부침을 견뎌내는 힘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권덕진 시인이 삶을 설행에 비유하여 강한 영상처럼 보여주며 봄을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소박한 민중의 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해마다 향기 품고 오시는 그대를/기다리는 것은/지난 상처를 잊고/새봄을 맞이하고픈 이유(봄비일부)라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받은 아픔의 잔영을 떨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소망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은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여망이기도 할 것입니다.

 

한동안 마음고생 하느라

저 강물도 꽁꽁 얼어붙었지

때가 되면 돌아올 거라고

묵묵히 기다리는 것

묵은 체증을 내려놓는 거겠지

그대와 맺지 못한 설익은 풋사랑도

어쩌면 실려 오겠지

쉬이 풀지 않는 독한 심술도

초록빛에 여문다

 

우수전문

 

잘 아시겠지만, 우수는 219일 또는 20일 무렵으로 24절기 중 두 번째입니다. 그는 우수가 되면 눈과 얼음이 녹아 비가 되어 새 생명의 싹을 돋아나게 하듯이 때가 되면 돌아올 거라고/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삶이라며 토닥입니다. 겨울은 보통 시련을 상징하는데, 이 시에서 겨울이란 말을 직접 쓰지 않았더라도 어렵지 않게 그것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듯합니다. 나아가 이 시를 반복 음독하다보면 겨울의 이미지는 매일 그저 그런 날들이라고 홀대했던 일상으로 전이되는 느낌이 전해질 것입니다. 일상의 소중함이 우수가 되어 해빙의 기운을 타고 찾아온 것처럼.

사실 사람은 거창한 것에만 소망을 빌고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생명의 최고 가치와 최선의 선택은 생존과 유전입니다. 인류는 고단한 진화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하루하루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에 최고 최선의 행복을 느꼈던 것입니다. 인류가 시련의 계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우수가 되면 돌아올 해빙의 계절에 대한 기다림 때문입니다. 권덕진 시인은 이러한 인류의 보편적 기다림의 서정에 어울리는 이미지와 어조로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삶을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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